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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ISSUE]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확대, 저예산 독립·예술영화 제작을 위한 과제
작성자 조은비 작성일자 2021-08-31
첨부파일 첨부파일 134호_한국영화_3_이슈.pdf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확대, 저예산 독립·예술영화 제작을 위한 과제
 


글 • 박준호〈서울경제〉기자


“1주는 휴일을 포함한 7일이다. 영화산업 1일 근로시간은 8시간, 1주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원칙으로 하되, 상호간의 합의하에 1일 노동시간은 12시간, 1주 노동시간은 52시간까지 할 수 있다.” 영화산업 표준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이른바 근로시간 조항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이른바 ‘주 52시간 상한제’를 못 박았다. 2021년 7월부터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사업장은 ‘거의 없다.’ 적어도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 받는 상용직 노동자 5인 이상의 사업장이라면 말이다. 7월 1일부터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길 수 없도록 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됐기 때문이다. 경영계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 조성에 나섰지만 정부는 예정대로 시행했다. 다만 우려가 많은 점을 고려해 당분간 엄격하게 근로감독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영화제작 현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영화제작 업종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조항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특례업종 중 하나였지만, 2018년 장시간 노동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특례업종에서 빠졌다. 그리고 지난해 7월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 상한제가 적용되면서 대부분의 상업영화 제작 현장도 대상이 됐다. 그리고 8월부터는 저예산 독립·예술영화 현장도 노동시간 단축이 의무화됐다. 제도 시행 전부터 자금 사정이 열악한 독립영화계가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지켜야 한다.

 


제작 현장에 맞는 노동이란
 

〈우리들〉 〈우리집〉 〈살아남은 아이〉 등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제작사 아토(ATO)의 김지혜 대표 프로듀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영향에 대해 “이대로라면 100%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으면 찍을 수가 없고 펀딩도 쉽지 않은데, 그런 상태에서 영화를 제작하자고 말하기가 애매해졌다”라고 말한다. 지난 2018년 〈우리집〉을 촬영할 당시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시행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짰다고 한다. 통상 독립 장편영화 촬영 시 15~20회차를 진행하는데 노동법 개정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고려해 계획을 잡으니 〈우리집〉은 40회차에 걸쳐 촬영하게 됐다. 2018년 기준으로 최소 3억 원의 예산은 확보한 상태에서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리집〉에 든 최종 예산은 5억 원이다.
김지혜 대표는 “3억~5억 원 수준의 예산을 맞출 수 있는 곳은 독립영화 제작사 중에는 없다. 저예산 독립영화는 펀딩이 어렵기 때문에 추가 지원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독립영화의 상당수가 학교 졸업작품이고, 사비를 들이는 일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산을 맞출 방법이 빠듯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이 1400개를 웃돈다. 이 중 상당수가 학교 졸업작품 등의 형식으로 매우 작은 규모로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독립영화를 제작해온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의 생각도 비슷했다. 이대로라면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지적에 전체적으로 동의했다. “(독립영화는) 예산이 적은데 인건비를 전체적으로 지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 누가 일을 하겠나. 그렇다고 해서 규정을 지키려면 적은 예산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그림이나 회차 등의 여건을 마련하지 못했다. 법을 어길 수는 없어 작업은 하고 있다. 하지만 부득이 촬영이 길어질 경우 스태프와 협의하거나 중단해야 한다. 추가 촬영에는 또 돈이 든다. 결국 후반 작업 등에 쓸 돈을 당겨쓰게 된다.” 흥행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투자사는 독립영화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결국 대본이나 연출 등을 상업적으로 바꾸는 등의 선택이 불가피하다. 독립영화 특유의 다양성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각종 지원금으로 버티기엔 늘어난 촬영 기간이 녹록지 않고, 결국 창작자와 제작사 등이 빚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창작자인 감독의 입장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어떨까.
〈밍크코트〉(2011) 〈속물들〉(2019)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오랜 기간 독립영화계를 지키고 있는 신아가 감독은 “촬영 회차를 18회 가져가면서 최대한 빡빡하게 진행했지만 추가 촬영이 필요해서 스태프들과 계약서를 다시 썼다”고 전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코픽), 지자체 영상위원회 등의 제작지원을 받으려면 표준근로계약서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시도에 제약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카메라 앵글이나 배우의 움직임 등 다른 접근을 시도하거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테이크를 여러 번 가져가기만 해도 시간이 더 드는데, 줄어든 노동시간에서는 이를 적용하기 빠듯했다. 그러다 보니 편집 등 후반 작업에서 독특한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을 정도로 소스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 기간을 필히 지켜야 하고, 회차가 줄어들고 노동 강도는 높아졌지만, 그는 “독립영화도 상업영화처럼 다들 너무 비슷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영화를 만드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동환경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홍태화 한국영화산업노조 사무국장의 어조는 단호했다. 당연히 지켜야 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에 법 시행을 앞두고 따로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대신 영화산업노조가 홈페이지에 올린 주 52시간 상한제에 대한 안내문을 보면 “예산이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근로기준법의 보편적인 적용을 받게 됐다. 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현장을 넘어, 차별받지 않는 노동자로서 거듭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되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그 배경엔 영화제작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진 과로사가 있다. 과로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이 지적됐다. 2018년 1월 영화 촬영 시스템을 적용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미술 스태프가 귀가 중 쓰러져 숨진 일이 있었다. 이때만 해도 영화산업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있었다. 당시 영화산업노조는 성명을 통해 특례업종을 규정한 조항의 폐기와 모든 사업장에 근로감독관을 배치하는 동시에 다음 촬영일까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엔 영화 그래픽 제작사 위지윅스튜디오에서 일하던 30대 스태프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숨지기 전 일주일 동안 하루 평균 14시간 30분간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 10시간의 휴식 시간도 참고로 3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 말까지 주당 8시간까지 추가로 노동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할 때 하루 평균 1시간 36분 안팎이 추가된다. 독립영화 현장 대부분이 30명 미만의 규모로 움직이는 만큼 정말 시간이 부족하면 이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특별연장근로는 근로기준법상에 규정하고 있는 각종 유연근로제 중 하나로, 재난·재해 등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외적으로 주 52시간 상한제를 초과해서 근무할 수 있도록 인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장을 모르는 이야기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테이크를 여러 번 가져가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질 수 있고, 칼같이 시간 따라 맺고 끊기가 쉽지 않다”며 “카메라 앵글을 잘 잡고 찍었다 생각했는데도 이상하다 싶으면 좀 더 찍게 되고, 시간을 넘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상업영화 제작 현장에 미친 영향
 


 

독립·저예산 영화가 아닌 일반적 상업영화의 경우를 살펴보자.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시점부터 주당 노동시간의 상한선이 52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건 분명하다. 이 같은 사항은 표준근로계약서에도 그대로 명시돼 있으며, 제작 현장에서도 대체로 지켜지는 분위기다. 국내 최대의 영화제작·배급사인 CJ ENM 측 관계자는 “현재 제작 중인 영화나 과거 개봉한 작품 모두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관련 법규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시간 조항을 담고 있는 표준근로계약서의 정착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 CJ ENM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정부 주도로 CJ와 영화 관련 노조가 참여해서 지난 2012년 완성한 노사정 이행협약이 시작이었다. CJ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제작사에 대해 투자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업계 1위의 투자·배급사가 나서자 파급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노사정 이행협약이 이어지면서 롯데엔터테인먼트나 쇼박스, 메가박스 등 주요 배급사들도 속속 참여를 결정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통해 노동시간을 확실히 명시한 시초는 2014년 〈국제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고, 〈국제시장〉의 경우 프리프로덕션 단계에만 통상 3~4개월 수준의 2배인 6개월이 걸렸다. 그 결과 촬영 장소를 미리 고르고 콘티도 명확하게 짠 뒤 촬영에 임했다. 촬영장에서는 한 신 안에서 여러 개의 셋업을 정해놓고 한 방향에서 찍을 수 있는 건 다 찍는 등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등을 명확히 정한 효과는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익상·김승경의 논문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후 영화제작 현장의 근로 환경 변화에 관한 연구」를 보면 완성도 높은 프리프로덕션을 통해 매 회차별 전체 촬영 순서와 컷까지 정확하게 명기된 콘티북을 만드는 풍토가 정착됐다. 이를 바탕으로 일일 촬영 계획표를 작성해 각자의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정해진 시간 내에 목표 분량을 촬영해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이 확립됐다고 언급했다. 노동 조건이 한번 나아진 경험을 한 이상 다른 현장에서도 비슷한 조건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예전 같은 조건을 제시해서는 스태프를 꾸리는 일조차 쉬운 게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현실적인 대안 필요
 

그렇다면 노동시간의 주 52시간 상한제에 대비하는 제작 현장의 자세는 어떨까. 코픽이 지난 5월 공개한 「2020년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연구보고서 결과를 보면 온·오프라인을 통해 영화 스태프 5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현장의 변화로 촬영 회차를 늘렸다는 응답이 38.5%(이하 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실제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했다는 응답이 34.0%로 많았고, 분야별 유닛을 확대해 교대제를 도입했다는 응답도 25.2%로 적지 않았다. 그 외엔 투입 인력 증원(17.6%), 작업 방식의 개선(17.3%), 기타(5.9%)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반면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도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4.9%였다. 촬영 회차를 늘림으로써 대응했다는 응답은 같은 조사의 급여 자료 분석 결과 나타난 근무 기간으로도 드러난다. 분야별 전체 근무 기간은 지난해 4.8개월로 전년 대비 0.16개월 증가했다. 모든 문제는 예산으로 귀결된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콘티북을 짜서 불필요한 동선을 최소화하고 장소 헌팅도 사전에 완료함으로써 촬영 회차를 줄인다 해도, 기본적 노동시간의 상한선이 줄었기 때문에 늘어나는 회차와 비슷하거나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촬영 회차가 늘어나면 그만큼 인건비와 4대 보험 등의 비용이 추가로 생긴다.
조달할 수 있는 예산에 한계가 있어서 독립, 저예산 영화 같은 경우 제작 자체가 쉽지 않아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코픽이나 각종 지자체의 영상위원회에서 문화 다양성이라는 공적 가치를 지키는 차원에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영화발전기금을 통해서 독립·예술영화의 제작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홍태화 한국영화산업노조 사무국장은 “영화발전기금의 취지가 ‘영화예술의 질적 향상과 한국영화 및 영화산업의 발전’에 있다. 영화산업과 예술적 발전에서 저예산 독립·예술영화의 의미를 잘 안다면 지원금의 폭을 확대하는 쪽으로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법 집행의 유예 등에서 대안을 찾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코픽이 공개한 지난해 영화발전기금 예산 및 결산 자료를 보면 영화 제작지원금으로 배정한 예산은 354억 8200만 원이다. 이 중 독립·예술영화의 제작 지원에 배정된 예산은 59억 8600만 원이다. 지원 규모는 전년 대비 5억 2600만 원(약 8.7%) 늘었다. 다만 전체 영화 제작지원금에서 독립·예술영화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16.8%에 그친다. 올해의 경우 독립·예술영화 지원사업 규모는 76억 2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약 27.4% 증가했다. 이 지원금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매년 매우 치열할 수밖에 없다. 올 상반기에 러닝타임 60분 이상의 장편 극영화를 대상으로 한 코픽의 독립·예술영화 지원사업에 접수한 영화는 총 224편이었다. 이 중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작품은 44편이며, 2차 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지원대상에 선정된 작품은 총 17편이다. 지원사업에 접수한 작품 중 최종적으로 지원받는 작품은 전체의 7.5%. 10개 중 1개도 안 되는 수준이다. 심사위원들의 심사 총평에서도 “언제나 그렇듯 좀 더 많은 지원이 이루어져 더 많은 작품에 기회가 가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지원사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원 폭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영화산업이 전체적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보니 영화발전기금만 바라보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영화관 업계는 영화발전기금에서 배급사에 개봉 지원금을 지급하고 입장료 할인권을 제공하기 위한 지원금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 상태다. 관람료의 3%를 모아서 조성하는 기금이니 영화업계 구제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당위는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문화산업에 주 52시간 상한제를 적용하는 게 무리가 있지 않냐는 주장도 내놓기도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 노동시간 단축 영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노동시간 단축제도가 영화 등 콘텐츠산업의 시장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라고 지적되는 이유 중 콘텐츠 기업의 핵심 업무인 창작 업무의 명확한 근무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근무시간을 정해놓는 방식이 업무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를테면 촬영장 대기 시간, 원거리 촬영 장소로의 이동 시간 등을 노동시간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를 따질 때 시비가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서도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을 뿐 정해진 건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이 노동시간 단축 이전에 계속해서 이어져온 스태프들의 과로사 앞에서 힘을 잃는 것도 사실이다. 법상 규정된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다음 날 촬영을 위한 준비시간 등을 합하면 실제 노동시간은 더 길 것으로 예상된다.

 


지원 및 정책 등 방안 필요
 

고용노동부에서 노동시간 관련 이슈의 주무 국장인 박종필 근로감독정책단장은 “통계적으로 전체 사업장에서 하루에 한 명꼴로 과로사가 발생한다. 산업재해 사고가 심각하다는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사고사가 하루에 3명꼴”이라고 말한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의 심각성이 지난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까지 이어졌던 산재사고 문제에 뒤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내가 일하는 사업장에서 그런 일이 안 벌어진다고 해서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영화제작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아무리 특수한 상황이라도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다.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러나 독립영화계는 법의 비현실적인 부분을 부정하며 영화 만드는 환경 자체를 해체하자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독립영화를 만들려면 위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연구와 대응책은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오랜 기간 독립영화계 전반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선배 입장에서 법 시행 후 뚜렷한 대응책을 내지 못한 점에 대해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독립영화계의 의견과 기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스태프와 영화제작 현장에서 협업 체제를 만들거나 영화제작 지분을 나누는 일종의 동업 계약을 하는 방안 등의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표준근로계약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책 차원에서 반영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다만 “노동시간 단축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야기되던 초기엔 독립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하는 막막한 정서가 많았지만 법적 환경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점을 거스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창작자들에게 고마운 면이 있다”고 말한다.
저예산 독립예술영화가 영화의 산업적, 예술적 면에서 갖는 의의를 생각해보면 결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전반적 주장이다. 김 집행위원장은 “현장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떻게 지원이 가능할지 코픽 등에서 가이드를 만드는 데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며 “현장 감독이나 프로듀서에게 물어보면 노동시간 등을 규정한 표준근로계약서를 지키면서 찍을 수 있는 예상 제작비를 알 수 있다. 그 기준으로 지원정책을 만들고 그 이하의 경우엔 어떻게 제작할지에 대해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도 “기본적으로 제도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형식적으로 제작 지원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적정한 여건을 만드는 것까지 지원사업에 포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정부의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에서 힌트를 얻어 영화제작 현장에서도 작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마다 사회적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는 것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그는 “프리프로덕션까지 합해도 영화 한 편의 제작 기간이 석 달 남짓이다. 1년 단위로 돌리면 4~5편의 제작 현장에 지원이 돌아갈 수 있다. 최저임금의 절반 정도를 보조한다 치면 큰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굳이 이런 식이 아니라도 좋다. 독립영화를 지원할 수 있는 상상력이 절실하다.”
독립영화에 투자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태생적으로 열악함을 극복하기 어렵다. 돈이 없으니,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인건비 등 추가 예산이 필요해도 맞출 수 없는 실정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대중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일반 상업영화와 구분되는 실험성과 독창성, 소재의 다양함 등 독립영화의 무기를 내려놓게 될 공산이 크다. 신아가 감독은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 가장 많이 묻어나는 영역이 콘티인데, 상업영화나 독립영화나 다들 비슷해지고 있다. 노동시간 관련 이슈가 영향을 미치면서 회차가 늘고 예산이 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워진 영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계의 새로운 힘은 독립영화에서 키워지는 게 있는데,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식이 커진 상태다. 법을 어겨가며 제작을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김지혜 아토 프로듀서의 고백은 지금 독립영화계의 고민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독립영화계에 몸담는 이유 중에는 상업적 부분 이외 다른 가치를 좇기 위한 면도 있지만, 언제까지 그런 당위에만 의존해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해달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판의 어느 누구도 이른바 ‘열정페이’로 착취하겠다는 악의는 없다. 과로사로 생명이 스러지는 일도 바라지 않는다. 독립영화계도 노동환경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기류도 있다. 표준근로계약서가 규정한 일종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건 창작자, 제작자로서도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독립영화가 다시 길을 잃은 모습이다. 정부는 근로감독관과 공인노무사가 현장에서 직접 솔루션을 같이 모색할 수 있는 컨설팅을 제공하기 때문에 전화 연락 한 번으로 같이 길을 한번 찾아보자고 말한다. 미봉책이 아닌 근본 해결을 위한 길잡이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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