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46번길 10. 광주극장은 1935년부터 주소가 바뀐 적이 없다. 개관 후 1960년대까지 영화, 연극, 판소리, 국극, 발표회, 리사이틀 등 다양한 공연을 올렸고 멀티플렉스가 등장한 이후에도 영화 상영 및 문화 공간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시민 곁을 지켰다. 단 하나의 스크린으로 극장의 원형을 유지하며 여전히 건재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가운데,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주극장의 존재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극장 문화를 연구하는 위경혜 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가 20년째 광주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형수 이사를 만나 그 의미에 대해 짚어보았다.
위경혜 광주극장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라는 수식어가 먼저 붙는다.
김형수 스크린이 하나뿐인 극장을 단관극장이라고 하는데, 90년대만 해도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광주극장이 국내 유일한 단관극장으로 소개되며 역사가 있는 극장이 문을 닫을 때마다 함께 언급된다. 씁쓸한 심경이다. ‘마지막’, ‘유일한 극장’이라는 수식어가 반갑지만은 않다. 마지막은 곧 사라짐을 뜻하지 않나. 그 공간에 담긴 역사가 제대로 조명받지도 못했는데, 폐관 소식을 접하면 단관극장이 단명극장으로 들리기도 한다. 스크린이 하나뿐이라는 의미에서 단관극장이라고 부르는 건 알겠는데, 명칭이 재정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공룡이 빙하기를 맞아 멸종했다면, 고전 형태의 극장은 자본의 공룡이라고 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거의 사라지지 않았나. 단관극장으로 호명하기 전에 그 공간에 담긴 역사와 쓰임을 살펴보고, 단관극장으로 불리게 된 배경을 알았으면 한다. 한발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에게 지역 문화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함유한 공간이라는 게 공유되길 바란다.
위경혜 나 역시 강의나 발표를 할 때 단관극장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유가 있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멀티플렉스만 경험했기 때문에 스크린이 하나인 극장의 존재를 모른다. 그래서 단관극장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나도 마음 한 편이 불편하지만 극장 원형을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사용하는 것이다. 광주극장은 일제 강점기에 개관한 극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공간으로 극장 문화에 있어 중요한 곳이다. 나 역시 유일한 단관극장이라는 수식어보다는 근대 역사문화 공간으로서 광주극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형수 많은 분들이 광주극장이 국내 유일의 단관극장인지 자주 묻는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도 운영 중인 전통 극장이 여러 개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명칭이 재정립되어야 할 것 같다. 한국 영화사는 2019년에 100주년을 맞이했는데 영화를 만든 사람도 있지만 영화를 상영한 공간, 극장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그동안 영화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늘어난 상영관 수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으나 개인 또는 전통 극장이 처한 상황이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게 여겨지며 그 가치가 낮게 인식되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지역의 전통 극장들에 대한 소중함을 되새기고 지역 시민과 함께 유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경혜 영화가 향유의 개념으로 관점이 바뀌면서 극장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볼 때 늦은 감이 있다. 타 지역 극장들이 문을 닫을 때 귀한 자료도 함께 손실되었다. 극장이 사라지기 전 개인들이 소장한 자료라도 모았다면 근현대사의 또 다른 역사를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내 전체 지역 극장에 대한 아카이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제작과 기술에만 인프라를 형성할 게 아니라 극장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 영화사 100년에 있어 근대 역사문화 공간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공간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김형수 그렇다. 역사 보존의 관점으로 보길 바란다.
80년 동안 광주극장에 쌓인 영화와 관객의 시간
위경혜 극장은 단순히 영화만 보는 공간이 아니다. 특히 각 지역 극장이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천에도 애관극장이 남아 있긴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고 들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도 마찬가지이고. 원주가 군사도시이던 시절, 군사 작전상 ‘C도로’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마침 극장이 여러 개 있어 사람들이 그곳을 ‘시네마 도로’라고 부른다. 또한 〈낯선 꿈들〉(2008)이라는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단관극장에 대한 지역민의 애정과 관심은 깊다. 그리고 범일동의 동시 상영관인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보림극장은 대규모 고무신 공장 노동자들이 자주 찾은 극장이었다. 이렇듯, 각 지역과 도시마다 극장에 대한 관객의 기억과 사연은 강렬하고 다양하다. 사라져가는 단관극장에 대한 기억과 관심을 환기하기 위하여 지역 극장을 테마로 한 영화제나 상영회를 해도 좋을 것 같다.
김형수 멀티플렉스는 관객과 근무하는 사람이 부딪힐 일이 거의 없지만 광주극장은 관객과 소통할 일이 많다. 자주 오는 관객과는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형성되어 대화도 자주 나눈다. 극장은 영화라는 예술을 만나는 공간이지만 그전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저마다의 추억이 쌓이는 곳이다. 얼마 전 중년 여성 관객 한 분이 광주극장에 대한 추억을 그림책으로 만들어 갖고 오셨더라. 고등학교 시절부터 결혼 후 아이와 함께한 순간까지 50년 넘게 극장을 찾았던 추억이 담겨 있었는데 정말 뭉클했다. 광주극장에 얽힌 개인의 사연과 역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극장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관객의 역사는 더욱 두터워지고 도시의 표정 또한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위경혜 그 책은 출판해야 하는 거 아닌가? 꼭 보고 싶다.(웃음)
김형수 몇 년 전 극장이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을 때 시민들이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예술영화 전용관사업’을 사전 심사에서 선정된 영화를 의무 상영하는 극장에만 보조금을 지원하는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¹으로 전환했을 때 광주극장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한다고 판단해 보이콧을 선언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고심 끝에 극장후원제도를 시행했는데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후원해주었다.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응원해주는 관객과 시민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광주극장을 함께 지켜간다는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
1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은 위탁수행사에게 예술영화 선정부터 상영관 확보 및 정산까지를 위탁했던 사업으로 현재는 전용관에 운영비용을 직접 지원하는 예술영화 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경혜 광주극장은 극장의 역할을 넘어 지역 내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형수 전시나 공연 등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지역 작가들과 협업해 ‘예술로’라는 사업을 진행해 광주극장의 다양한 굿즈도 제작했다. 또한 시민영화간판학교를 개설해 시민들이 직접 그린(광주극장의 전통인) 극장 간판도 유지하고 있다. 광주극장을 운영하신 분이 살던 집은 스터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씨와 인디 뮤지션들이 극장의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다.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지만 100년이 되었을 때 광주극장의 역사가 시민의 역사가 되길 바란다. 공간에 역사가 쌓이면 기획의 폭이 확장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지역 극장을 살리기 위한 제도 점검 필요
위경혜 각 지역 극장이 폐관하지 않도록 돕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연구자로서는 실태조사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기관에서 각 지역의 극장이 휴업 중인지, 운영 중인지 파악하다 보면 의외로 드러나지 않았던 극장이 발굴되지 않을까 싶다. 극장은 사유재산을 넘어서 공공의 역사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역민의 자긍심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경우 철거 위기에 처했을 때, 원주영상미디어센터와 도시재생연구회 등 시민단체들이 나서지 않았나. 시민 포럼도 진행한 덕분에 극장이 보존되었다.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했다면 다들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김형수 서영진위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노후한 시설을 개선하기에는 부족하다. 관객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역 내 단관극장이 하나뿐이라면 지원이 아니라 특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젊은 세대가 소셜네트워크에 광주극장을 공유하면서 가볼 만한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그에 비해 공간의 개보수가 미흡한 상황이다. 오늘도 정기 안전점검을 받았는데 지적을 많이 받았다. 지하부터 4층까지 범위가 넓어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영진위에만 짐을 지울 게 아니라 지자체와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자체는 공간의 역사성을 중심에 놓고 무엇이 시급한지 점검한 뒤 점진적으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조례가 마련되길 바란다.
위경혜 조례 마련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시민의 문화향유 측면에서 보면 온전히 영진위의 몫인가 묻게 된다. 인천의 애관극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² 봤는데, 한 노인에게 극장에 왜 오느냐고 물었더니, 외로워서 온다고 대답하더라. 극장에 가면 타인과 소통할 수도 있고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까. 극장은 원래 공론장의 역할부터 대중문화의 확산까지 여러 가지 역할을 해왔다. 옛날에는 영화 상영 전, 그 동네에 새로 오픈한 가게의 광고가 나오곤 했다. 극장에서 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개념을 확장하면 극장이야말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에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영진위에 전담할 게 아니라 지역사회의 행정 관련 기관과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2 윤기형 감독의 <보는 것을 사랑한다>, 애관극장의 어제와 오늘을 역사 자료와 관련자 100여명의 인터뷰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형수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사업이 2003년에 시작되었는데 영진위 지원금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20년 동안 물가지수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재부 예산 때문에 상향할 수 없다고 하는데 독립·예술영화관은 입장수입 매출 외에는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지원금이 동결되어 있는 만큼 현재 기준에 맞췄으면 좋겠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바꾸려는 행정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위경혜 지역 정치인들이 광주극장을 찾을 때가 있는데, 입장 바꿔놓고 보면 그들도 관객이다. 행정가로서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하여 지역 극장을 살리고 확장할 수 있는 제도를 점검했으면 좋겠다. 장기적으로 예산을 배정하지 못하면 단기적으로라도 지원 사업을 계획했으면 한다. 나아가, 단관극장에 관하여 일시적인 관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상영과 관람 문화 향유 증진을 위한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김형수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것이 담론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위경혜 같은 마음이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